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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트래블: 한 동네에서 2주간 살아봤습니다

by 예두리 2025. 6. 26.

‘여행’과 ‘살기’는 생각보다 다른 말이다. 오늘을 슬로우 트래블에 대해 설명해 드릴 예정입니다.

슬로우 트래블: 한 동네에서 2주간 살아봤습니다
슬로우 트래블: 한 동네에서 2주간 살아봤습니다

여행이 아닌 ‘삶’을 빌려본다는 것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유명 명소를 찍으며 걷는 건 ‘관광’이고,
어느 마을의 아침 방송 소리에 잠에서 깨 밥을 짓는 건 ‘삶’이다.
나는 이번 여름, 단순한 휴가가 아닌 진짜 로컬 속에서 2주간 살아보기를 선택했다.

장소는 전라남도 곡성군의 한 시골 마을.
휴대폰엔 신호가 약했고, 마을엔 카페보다 텃밭이 많았다.
처음엔 심심할까 두려웠지만, 의외로 ‘심심한 것’이 내겐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도착 첫날, 마을 입구에서 만난 80대 박 할머니가 말했다.
“왔는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마늘밭 일손 좀 거들어보소.”
그 말에 따라간 밭에서 땅을 파고, 마늘을 뽑고, 흙을 털면서 나는 조금씩 이 동네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여행객’이라는 단어는 없다. 누구든 손을 보태면 그냥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낮에는 마을의 손, 밤에는 나의 글

아침 6시에 일어나 마을방송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 집 마당에서 수박 나눔 있어요!"
"경로당 전등 고친다 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런 방송이 내 하루의 시작이자, 일과표였다.

나는 매일 오전엔 마을 어르신들의 밭일을 돕고,
오후엔 빈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한쪽에서 글을 썼다.
도시에선 늘 시간에 쫓기며 쓰던 문장들이,
이곳에선 숨을 고르고 나오는 진짜 내 말 같았다.

밤이 되면 마을 청년들과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들은 대도시에서 내려온 청년 창업자들이었고,
나는 오히려 그들의 도전에서 더 큰 용기를 얻었다.
“여기서 살아도 괜찮을까요?”라는 내 질문에,
한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도시 사람들 다 그렇게 물어요. 괜찮은지. 근데 살아보면 알아요. 안 괜찮은 것보다 괜찮은 게 많다는 걸.”

이곳에선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비가 오면 다 같이 텃밭 고랑을 막고,
더우면 느티나무 아래에서 부채질을 나눴다.
그렇게 나는 여행자가 아닌, 이 마을의 한 명이 되어가고 있었다.

‘살아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 시간

2주가 지나 이곳을 떠나려던 날, 박 할머니는 무 말린 꾸러미를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밥 안 굶을 만큼은 보내야지. 또 올 테지?”
나는 순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정말 ‘돌아올 사람’으로 불리는 것 같아서.

떠나는 날 아침, 마을 회관 앞에 모인 어르신들이 내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어디 가서 말할 땐, 곡성 사람이라고 해라잉~”
그 웃음 속엔 내가 잠시 살다 간 사람이라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번 ‘2주 살기’에서 특별한 관광지를 가지 않았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도 별로 없고, 맛집 리스트도 비워져 있다.
하지만 이 마을의 장맛, 밭 흙 냄새, 사람 손의 온기,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나눈 대화는 어떤 고급 리조트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슬로우 트래블이란 단지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깊게 머무는 방식의 여행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속엔 소비 대신 관계가 있고, 구경 대신 함께 살아보는 경험이 있다.

 

🐾 마무리하며 – 다음 여행의 속도를 다시 생각해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빠르게 소비하며 여행한다.
하지만 어떤 곳은, 빠르게 걷는다고 더 많이 보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살아볼 때만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혹시 다음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가장 바쁘지 않은 동네의 가장 느린 골목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그곳에서 당신의 이름 대신, 당신을 기억해줄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