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여행지가 있다.
그곳들은 아름답기 때문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기 때문에 기록해야 하는 장소다.
오늘은 기후 위에 앞에서 사라지는 여행지들의 대해 설명해 드릴 예정입니다.
녹아내리는 풍경, 알래스카의 빙하 앞에 서다
눈 덮인 설산과 파란 얼음 벽. 알래스카의 빙하는 한때 ‘영원의 얼음’이라 불렸다. 하지만 나는 그 풍경을 마주한 순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알래스카의 멘덴홀(Mendenhall) 빙하는 최근 10년 사이 800m 이상 후퇴했다. 얼음의 언어는 조용하지만 확실하다. 그것은 “나는 사라지고 있다”는 무언의 경고다.
빙하 위를 걷는 투어를 신청했지만, 현지 가이드는 투어 전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이 루트도 5년 전까진 얼음이었어요. 지금은 바위만 남았죠.”
빙하 트레일은 오히려 ‘얼음 없는 얼음길’이었다. 발밑엔 작은 시냇물이 흘렀고, 그 물은 바로 빙하가 녹아 흐른 것이다.
빙하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 속엔 수천 년의 지구 역사가 녹아 있다.
문제는 단순히 ‘관광 명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빙하가 사라지면, 해수면이 오르고, 극지방 생태계 전체가 붕괴된다.
백곰이 굶주리고, 어민들이 삶터를 잃는다. 결국 그 여파는 지구 전체로 번진다.
내가 그 빙하 앞에 서 있었을 때, 마치 내 아이의 미래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끝없이 번지는 초록의 경고, 사라지는 툰드라 지대
러시아 시베리아, 캐나다 북부, 알래스카의 고지대에 펼쳐진 툰드라는 여름에도 꽃이 피지 않는 얼어붙은 땅이다. 하지만 지금, 이 툰드라는 조금씩 녹고 있다. 눈에 띄는 건 단순한 기온 상승이 아니다. 지구의 ‘냉장고’가 고장 나고 있는 것이다.
영구동토층(permafrost)이 녹기 시작하면, 지면 아래에 갇혀 있던 메탄가스가 방출된다. 이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 강력한 온실가스다.
기후학자들은 이 현상을 ‘피드백 루프’라 부른다.
기후 변화 → 툰드라 해빙 → 메탄 방출 → 더 빠른 기후 변화,
이 악순환은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다.
나는 한 여름, 캐나다 북쪽의 툰드라 지대를 지날 기회가 있었다.
예전에는 풀이 자라지 않던 곳에 이름 모를 잡초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이끼 위로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보기엔 아름답지만, 그건 툰드라가 죽어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 지역의 생물학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생태계가 바뀌면, 북극여우나 순록은 갈 곳이 없어져요. 그들은 한 세대 안에 사라질 수도 있어요.”
한 생물종이 사라진다는 건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전체 생태계 퍼즐 한 조각이 무너진다는 의미다.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 나라, 투발루와 몰디브의 외침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해발 고도 평균 2m.
조금만 해수면이 상승해도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긴다.
이미 마을의 일부는 이주했고, 정부는 국토 전체의 침수를 가정한 “국가 이주 계획”까지 수립 중이다.
이제 그들은 물리적인 국경이 아닌, 존재의 위협 앞에 놓여 있다.
내가 투발루에 다녀온 것은 몇 해 전이었다. 섬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야자수, 얕은 바닷물, 아이들의 웃음.
하지만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할머니는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바다를 사랑했지만, 이젠 그 바다가 우리를 삼키려 해요.”
비단 투발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몰디브 역시 비슷한 처지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이름난 이곳도, 일부 리조트는 더 이상 영업하지 않는다. 백사장은 줄어들고, 바닷물은 매년 조금씩 더 깊이 마을로 스며든다.
기후 변화가 단지 ‘극지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 섬나라들이 증명하고 있다.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건,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나라들이라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지구의 부자들이 만든 위기를, 지구의 가난한 이들이 먼저 떠안고 있다.
우리는 어디까지 외면할 것인가?
이 글은 여행 에세이라기보단,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경고문이다.
빙하, 툰드라, 섬나라. 모두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같은 경고를 보내고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아니라, ‘곧 사라질지도 모를 곳’이라는 인식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시대.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 여행 후기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여행, 그리고 책임감 있는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