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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우연한 대화가 남긴 따뜻한 여운

by 예두리 2025. 6. 26.

여행지에서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종종 풍경보다 사람입니다.
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마주친 상인의 한 마디, 길을 걷다 나눈 짧은 대화가 마음을 오래 울리곤 하죠.
그들은 이름 없는 이방인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주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의 우연한 대화에 대해 설명해 드릴 예정입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우연한 대화가 남긴 따뜻한 여운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우연한 대화가 남긴 따뜻한 여운

“나는 오늘도 삶을 굽고 있어요” – 나폴리 피자 장인 마르코

이탈리아 나폴리의 어느 골목. 구글맵에도 잘 뜨지 않는 작은 피자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겠구나’ 싶어 합류했고, 40분쯤 지나 드디어 마르코를 만났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Buonasera!”라고 인사했고, 화덕 앞에서 피자를 구우며 말도 참 많이 했다.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 메뉴는 단 두 가지뿐. 마르게리타와 마리나라.
하지만 그 한 장의 피자엔 시간과 고집,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피자를 구우셨어요?”
그는 손에 밀가루를 털며 말했다.
“16살 때부터. 지금 38이니까... 22년째요. 나는 피자 말고는 잘하는 게 없어요. 근데 그거면 충분해요.”

가게 벽엔 가족 사진 한 장과, 아주 오래된 나폴리의 거리 풍경이 붙어 있었다.
“저게 우리 아버지예요. 저도 그때처럼, 골목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세상은 변했지만 화덕은 그대로죠.”
그 말에 이상하게 울컥했다.

그가 건넨 마르게리타 피자 한 조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매일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도 자부심을 잃지 않는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였다.

떠나기 전 내가 물었다.
“하루에 피자 몇 판이나 구우세요?”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하루에 40판, 그리고 내 인생 한 판.”

“지도 없이 가는 여행, 그게 진짜야” - 베를린에서 만난 스웨덴 청년

베를린의 어느 늦은 오후, 중앙역 대합실 한쪽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금발 청년.
그의 이름은 욘(Jon), 스웨덴에서 온 20대 중반의 여행자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췄고, 노래가 끝난 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자주 공연하세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냥 기차표 살 돈이 모자라서요. 하하.”

그는 3개월째 유럽을 돌며 여행 중이라고 했다.
숙소는 대부분 침낭 하나, 길 위에서 해결하고
돈이 생기면 열차를 타고, 없으면 하루 더 머무른다고 했다.

“여행 계획은 없어요. 내일 어디로 갈지도 몰라요. 그냥 오늘 만난 사람, 지금 듣는 노래, 그런 게 내 나침반이죠.”
그의 말투엔 어른스럽지 않은 솔직함과,
자유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 특유의 맑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에게 두려운 건 없냐고 물었다.
“없진 않죠. 그런데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
그 사람이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그런 순간이 있어요. 그럼 알게 돼요. 세상이 그렇게 차갑진 않다는 걸.”

그날 나는 욘에게 커피 한 잔을 샀고, 그는 나에게
“네가 오늘 내 여행 중 가장 따뜻한 순간이야”라는 인사를 남겼다.
우린 다시 만나지 못할 테지만, 나는 여전히 어떤 날엔
그 청년의 기타 소리와, 커피 잔을 사이에 둔 웃음을 떠올린다.

“이 도로 위에서 평생을 살았죠” - 몽골 고속도로의 트럭 운전사

몽골 울란바토르를 빠져나와 고비사막을 향해 달리던 날이었다.
도로라기보다는 먼지길에 가까운 길 위, 검은 트럭 한 대가 내 차 옆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휴게소도, 가게도 없는 공간에서 차를 세우고 간단한 정비를 하던 중,
트럭 운전사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장났어?”

그의 이름은 간볼드(Ganbold).
몽골 전역을 오가는 장거리 화물차 기사로, 30년째 같은 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했다.
차 안엔 가족 사진이 붙어 있었고, 조그마한 난로와 차 주전자가 있었다.
“트럭이 내 집이에요. 여기가 침대고, 저긴 식당. 나는 이 길 위에서 살고 있어요.”

나는 그와 나란히 차에 앉아 짠한 염소 우유 차 한 잔을 나눠 마셨다.
그리고 물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예요?”
그는 멀리 사막 끝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한겨울에 차가 멈췄을 때요. 영하 40도였는데, 밤새 시동도 안 걸리고,
라디오도 안 나와서... 가족 목소리도 못 들었죠. 그때 정말, 무서웠어요.”

하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런 날이 아니었다.
“한 번은 길 잃은 외국인 관광객을 데려다 준 적 있어요.
정말 아무 데도 없는 곳이었는데, 고맙다고 엽서를 보냈더라고요. 아직도 차 안에 있어요.”

나는 그의 트럭 조수석에 앉아,
삶을 도로 위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강하고 조용한 따뜻함’을 느꼈다.